본문 바로가기
Tea

우리나라의 커피 역사 : 고종황제와 커피

by 건강수 2023. 7. 11.

점심시간이 되면 식사 후 한 손에 커피 한 잔씩을 들고 이동하는 직장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커피가 궁궐인 경복궁이나 덕수궁에서 서양인을 접대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고종황제가 커피를 상당히 좋아했다고 하는데 오늘은 우리나라에서의 커피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썸네일 커피원두

고종황제와 커피

1896년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살해되는 을미사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여 1년간 머물게 된다. 그때 처음으로 커피를 접하게 되고 그 맛을 잊지 못해 환궁한 뒤 덕수궁에 정관현이라는 서양식 집을 짓고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신하들에게 권하거나 하사도 하였다고 한다.
고종황제는 커피 사랑으로 커피에 독약을 타서 암살의 위협을 받은 적도 있는데 평소 향을 먼저 즐기고 커피를 마셨던 습관 덕분에 평소와 다른 커피의 향을 느끼고 암살의 위협을 피했으나 태자(순조)는 그를 모르고 마셨다가 바로 뱉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입안에 여독으로 인해 치아를 18개나 잃었다고 한다. 
후에 고종황제의 총애를 받던 손탁이라는 독일인에게 정동 사옥을 하사하는데 그곳에 손탁 호텔을 짓고 1층에 들어선 정동구락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카페로써 민간인들에게 커피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커피의 등장 

커피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등장한 기록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비 유학생인 유길준의 서유견문에서 볼 수 있다.  그곳에는 "우리가 숭늉을 마시듯 서양 사람들은 커피를 마신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커피는 중국식 발음으로 가베 혹은 탕약과 비슷하나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라 하여 양탕국이라 불렸다. 개항기 초기에 커피는 가게에서 판매하는 음료라기보다 궁궐에서 서양인을 접대하는 차의 한 종류였다.  당시 인천의 <대불호텔>이나 정동의 <손탁호텔>은 주로 서양인들이 묵는 곳이었으므로 기본적으로 커피 판매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우리나라와 커피 

서양인 선교사들이 커피를 가지고 한국에 와서는 한국인들에게 차로 대접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커피가 일반인들에게 많이 퍼져서 1930년대 후반에는 다방도 많이 생겼다. 이 시기 커피는 원두를 갈아 주전자에 끓인 후 체에 밭쳐 걸러 먹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 전쟁으로 수입이 통제되면서 커피의 소비는 줄어들었다. 
 

커피 에피소드 1  :  커피의 대중화

일제 강점기부터 커피는 조선 사람들에게 대중화되며 다방도 많이 생겼고, 상점에서 판매도 되었다. 1930년대 후반에 커피를 판매하는 다방이 많이 생겨났다. 동아일보 1936년 3월 4일 자 <춘일수상(1) 홍차 한잔의 윤리>라는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볼 수 있다. 
'서울 올 때마다 눈에 띄는 것은 다방의 발전이다. 그 양적 발전뿐만 아니라, 장치나 음악도 여간 고급화되지 않았다.  6~7년 전만 해도 서울에 순 끽다점으로 변변한 것이 없어 동경서 끽다 취미가 있던 학생의 불만이 되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급속도의 발전이다. 다방에서 나의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초저녁부터 가득 차 있는 젊은 손님들이다.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면서 세상을 잊고 있지 않은가?'
 

커피 에피소드 2 : 커피 구입방법

신문에 커피를 사는 법이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에 커피는 원두를 갈아서 가루로 팔았다. 정월 초순에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서 접대를 할 때를 대비해 커피를 사는데 커피 품질은 '남미 모카'가 제일이고 다음으로 '자바', '브라질산'이었다. 살 때는 신용 있는 가게에서 구입하고, 있는데서 갈아달라고 하고 그렇지 못하면 신용 있는 상점의 상표를 보아 사라고 하였다. 싼 커피는 가금나무뿌리, 콩, 나뭇잎 껍질 같은 것을 가루로 만들어 넣는 일이 있으므로, 분별하려면 컵에 물을 넣고 커피를 넣어 전부가 가볍게 떠오르는지 알아보라고 하였다. 전부가 가볍게 떠올라야 좋은 커피인 것이다.' (동아일보, 1934년 12월 27일 <커피, 코코아, 홍차 사는 법과 택하는 법>)
 

커피 에피소드 3  : 커피 끓이는 방법

일제 강점기에 원두커피가 판매되었으나, 원두커피를 마실 수 있는 기구가 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신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커피차 끓이는 요령을 설명하고 있다.
아마 지금 우리가 보통 쓰고 있는 것은 부라질이나 자바에서 오는 것이겠습니다..... 이상적으로 끓이는 법은 한 컵의 분량에 찻술로 커피가루 셋 비례로 넣는데 먼저 물을 펄펄 끓이고 커피를 분량대로 넣는 동시에 불을 약하게 하면서 5~ 6회를 저으면서 다시 끓어오르거든 불을 끄고 2~3분 그대로 두었다가 커피 가루가 가라앉거든 차 거르는데 걸러서 씁니다....' (동아일보 1935년 11월 22일 <이렇게 하면 일층 더 맛이 있는 커피차의 이야기>)
 

커피 에피소드 4 : 사치품 커피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 남경을 함락시키면서 중국과의 전쟁이 가속화된다. 전쟁이 격화되면서 물자가 통제되는데 커피는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수출에 제한을 받는다. 1939년에는 대만산 커피가 주목을 받기도 하였으나 생산이 많지는 않았다. (동아일보 1939. 04.22. <대만산 커피>)
커피를 단지 마시는 기호식품이라고만 여겼는데 스토리를 알면 마시는 재미가 더해진다. 이제는 구하기 어려워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도 아닌, 값비싸게 구입해야 하는 사치품도 아니다. 너무 대중화되어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음료로 사랑받고 있다. 커피 이야기로 차 마시는 재미를 더하면 좋을 듯하다.